[강연회] 인문교양강좌 美 〈노년의 美: 시간의 물결에서 발견하는 美〉
 
 
 
4987까페혜화 교차로 | 구하 박정주 칼럼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2013.04.09조회수 3754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창작과비평,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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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부 전화 걸기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면서 안부 전화는 그 시도조차 드물다. 안부 전화 없이 지내다 멀어진 친구도 여럿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거나, 그들의 안녕이 궁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천성이 차갑기도 하지만 먼저 손 내미는 일에 미숙한 탓이 크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내에게 자주 듣는 핀잔이 “어머님에게 전화 좀 해!”란 말이다.

어제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다. 가끔 어머님은 저녁 뉴스를 보다가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내게 전화를 하신다. 이번엔 북한의 인터넷 선전 매체 ‘우리 민족끼리’ 가입자 중에 일부 전교조 교사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민족끼린지 뭔지 때문에 전교조 교사들 조사한다고 하던데 혹시 너도 거기에 가입했냐?”, “작년에 전교조 그만뒀어요. 그런 일 없으니 걱정 말아요.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요?”, “....(웃으시면서) 아니, 우리 아들 목소리 듣고 싶어서 했지!”

전화를 끊고 나서 기분이 묘했다. ‘다정이 병’이라도 되는 양, 어머님과 나 사이에 그런 다정한 말은 낯설다. 아들 목소리, 듣고 싶은 아들 목소리......내가 먼저 거는 안부 전화는 아내로부터 어머님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난 뒤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아내의 재촉에 떠밀려 하고, 어쩌다 전화를 해도 용건만 간단히 말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 데가 아니다. 단지, 매정할 뿐이다. 최근 들어 얼핏 들었던 어머님 말씀이 생각났다. 아내에게 “나 젊었을 때 왜 그렇게 애비를 때리고 야단쳤나 몰라. 내 평생 그게 가장 후회돼”. 고모님에겐 “손주놈들이고 뭐고 큰아들만 생각나요”

어머님은 12살 때 고향 고원(원산 외곽)을 떠나 월남했다. 외할머니는 딸 하나를 둔 뒤 20년 만에 늦둥이로 어머님을 낳았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맞이한 해방 정국에서, 북의 인민위원회는 대지주였던 외가댁 가산을 몰수했다. 외할머니는 세상을 뜨시기 직전에, 38선 길 안내로 생계를 잇던 동네 아주머니에게 당신의 금가락지를 건네주면서 막내딸을 서울지법 판사였던 양 오빠(외할아버지는 후사를 있기 위해 조카를 양자로 입적)에게 데려다 주라고 부탁하셨다. 그 해 가을, 어머님은 야음을 틈타 한탄강을 건너 입경했고, 1·4 후퇴 때 단신으로 월남하신 아버님을 만나 혼인하셨다. 내 나이 열한 살, 어머님이 서른넷이던 1969년, 이미 그 오래 전부터 남이나 다름없이 사셨던 두 분은 어머님의 요구로 법적 타인으로 갈라섰다. 그 후로 오랫동안 우리 형제는 어머님이 마련한 양지에서 자랐다. 살면서 드리워진 그늘은 오로지 어머님 몫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어머님의) 그늘”의 깊이를 찬찬히 들여다 본 적이 없다. 그저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이다. 성정이 대쪽 같던 어머님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식은 아직 어리고 자신은 복사꽃 같은 삼사십 대 여인에게도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혼전엔 시를 쓰던 이를 연인으로 두었고(그는 10여년 전에 캐나다에서 일시 귀국해 어머님을 다시 만났다) 유난히 영화를 좋아했으니 홀로 지낸 그 긴 세월 동안 읽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얼마나 많았겠으며 당신만의 연인 또한 왜 없었겠는가. 그렇듯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았겠지만, 어머님의 미래는 오로지 잘 익은 복숭아로 성장할 두 아들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텐데, 나는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다.

내 아우는 처자와 함께 베트남에서 살고 있고, 나와 어머니는 가깝지만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우리 형제는 ‘어디 먼 데 닿아 있는 흩어진 꽃잎들’이다. 이제 어머님은 그 흩어 진 꽃잎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시다. 살가운 안부가 아니어도 좋다. 하나마나한 얘기라도 좋다. 아들 목소리는 노년의 음악이요 詩다. 평생을 업고 살아온, 앞으로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외로움을 덜어줄 유일한 위안이다. 내 나이 오십대 중반, 이제 나도 당신과 함께 들어야 한다.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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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
선생님, 시 한 편에서 시작된 글이 인생을 보여주는군요. 읽으면서 작고하신 어머니 생각 많이 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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