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인문교양강좌 美 〈노년의 美: 시간의 물결에서 발견하는 美〉
 
 
 
4987까페혜화 교차로 | 구하 박정주 칼럼
 
 
바람아 멈추어다오 2013.03.19조회수 3146
 

“반드시 있어야할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스스로 즐겨 마지않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山居 중이던 한 친구가 전한 짧은 소식이다. G.들뢰즈의 명제가 생각난다. “타자는 나의 미래다.”

나는 반드시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한 가정 한 직장에서 20여 년 붙박고 살지만 송판에 박힌 대못처럼 단단하지 않다. 몸에 든 바람이 멎지 않는다. 마음이 부초다. 내 안의 바람, 편서풍, 그 유랑의 역사는 멀고 오래다.

‘나’의 기원은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지대다. 바람의 고향, 그곳 카자흐 초원을 떠돌던 유목민 시절부터 나는‘나’로 거듭 태어났다. 나는 서풍에 실려 산을 넘고 들을 건넜다. 중가리아 분지와 알타이산맥 어느 계곡엔 바스러진 내 뼛조각이 묻혀있고,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호를 뗏목을 타고 건너다 물빛에 눈이 멀기도 했다. 몽골 오르혼강을 건너 바얀촉트 고원에서 돌궐의 재상 톤유쿡의 비문을 보았다.“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가슴에 새겼다. 완만한 대싱안링산맥을 넘어 쑹화강 상류의 창춘에 이르는 동안 내 시신은 아홉 번의 풍장風葬을 겪었다. 북만주 광활한 침엽수림 지대와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각각 두 세기를 살다가 두만강을 건너 원산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어머니로 태어났다.

1947년 한반도, 누구든 세상과의 불화는 어쩔 수 없었다. 열두 살의 나는 마을아주머니와 경원선을 타고 연천역에 내렸다. 구름 낀 그믐밤, 우리는 초병 몰래 전곡 한탄강을 건넜다. 11월 찬 강물에 젖은 세라복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채, 그러모은 골짜기 낙엽을 덮고 밤을 보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틈타 소요산을 넘어 동두천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시작되는 경원선을 타고 서울로 들어왔다. 그 후로 10년 뒤, 나는 지금의 나를 낳았다.

열 살 때, 나는 나에 대해 눈을 떴다. 마인데르트 드용(Meindert De Jong)의 동화책 <희망은 운하를 타고>를 읽으면서였다. 한 아이가 스케이트를 타고 네덜란드의 얼어붙은 운하를 여행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였다. 책을 덮는 순간, 누대에 걸쳐 바람이 빚어 놓은 기억들이 내 몸과 머릿속에 흘러 다녔다. 그 후로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내 안의 밝음과 어두움을. 초원의 길을 밝히던 햇빛과 그 풀밭에 누워 맞이하던 젊은 날의 저녁들을. 그리고 내게 답했다. 머무는 것은 내 것이 아니요 흐르는 것만이 내 것이라는 것을.

군 시절에도 나는 행군을 좋아했다. 실내고개, 수피령, 하오고개. 첩첩산중에서 만나는 산자수명山紫水明이 닭장 같은 내무반 생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로마나 베니스의 고대 유적은 기억에 흐릿하지만 해바라기 밭으로 뒤덮인 플로렌스의 시골길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까지 나는 스물 한번 이사했다. 그 대부분이 한 때 어머니였던 나와 지금의 내 안을 흐르는 바람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대륙의 동쪽 끝,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일본 채색 판화(우끼요에)의 대가 카츠시카 호쿠사이는 평생 아흔 세 차례나 이사해 불염거(不染居)란 호까지 사용했다. “있는 곳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그를 동경하는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있는 곳에 물들고 싶다. 있어야 할 곳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은 정체전선, 차가운 나와 따뜻한 내가 엉켜 그늘진 세월을 드리우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맑아지는 걸까. 비 갠 뒤에 부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친구의 전언을 들으며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구절을 떠올린다.


Rene Aubry - Lungom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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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