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

저자

홍사용

역자

최원식 박수연 노지연 허민

기획

노작홍사용문학관

발행일

2022.12.05

사양

760p, 153*225mm

정가

38,000원

ISBN

979-11-92085-67-8 (0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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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소개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시인이자, 시·소설·희곡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근대 낭만주의 문학을 이끌었던 노작 홍사용(1900~1947)의 정본 전집(전2권)이 마침내 출간되었다.


제1권은 홍사용의 전 작품을 집대성한 작품집으로, 시 36편, 소설 6편, 산문 13편, 희곡 4편, 평론 2편, 기타 3편 등 64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으며, 부록으로 생애 연보 및 화보, 작품 연보, 노작 문학 해설, 노작에 대한 근현대 비평/기사/연구 목록 등에 이르기까지, 총 7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그의 육필 시조집인 <청구가곡> 완역본을 수록한 것은 그야말로 ‘정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귀한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목차


발간사 / 편찬의 말 / 일러두기


제1부 시


어둔 밤

커다란 집의 찬 밤

철 모르는 아이가

벗에게

새해

백조(白潮)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꿈이면은?

통발

어부(漁父)의 적(跡)

푸른 강물에 물놀이 치는 것은

시악시 마음은

봄은 가더이다

비 오는 밤

별, 달, 또 나, 나는 노래만 합니다

희게 하얗게

바람이 불어요!

키스 뒤에

그러면 마음대로

노래는 회색(灰色)—나는 또 울다

해 저문 나라에

어머니에게

그이의 화상(畵像)을 그릴 제

흐르는 물을 붙들고서

커다란 무덤을 껴안고—묘장(墓場) 1

시악시의 무덤—묘장 2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한선(寒蟬)

월병(月餠)

각시풀—민요 한 묶음 1

시악시 마음이란—민요 한 묶음 2

붉은 시름—민요 한 묶음 3

이한(離恨)—속민요(續民謠) 한 묶음

감출 수 없는 것은

고추 당초 맵다 한들

호젓한 걸음

※대표시 원문


제2부 소설


노래는 회색(灰色)—나는 또 울다

저승길

봉화가 켜질 때에

귀향(歸鄕)

뺑덕이네

정총대(町總代)


제3부 산문


청산백운(靑山白雲)

그리움의 한 묶음

서문

고열한화(苦熱閑話)

산거(山居)의 달

우송(牛頌)

진여(眞如)

궂은비

추감(秋惑)

처마의 인정(人情)

향상(向上)

궁(窮)과 달(達)

두부만필(豆腐漫筆)


제4부 희곡


할미꽃

흰 젖

제석(除夕)

출가(出家)


제5부 평론


조선(朝鮮)은 메나리 나라

백조시대(白潮時代)에 남긴 여화(餘話)


제6부 기타


육호잡기(六號雜記) 1

육호잡기 2

육호잡기 3


해설


부록

1. 노작 관련 근현대 비평, 기사, 연구 목록

2. 노작 추모의 글

3. 홍사용 생애 연보

4. 홍사용 작품 연보

5. 『청구가곡(靑邱歌曲)』

※『청구가곡』 원문

지은이

지은이 : 홍사용(洪思容, 1900~1947)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새별 등이 있지만 주로 ‘노작’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1900년 5월 17일(음력),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아버지 홍철유와 어머니 능성 구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적지는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 492번지다. 석우리(石隅里)는 속칭 ‘돌모루’라 불리는 곳으로, 남양 홍씨의 집성촌이며 현재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 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검거된 바 있다. 1920년 박종화, 정백 등과 순문예 동인지 『문우』를 창간하였고 1922년 문화사를 설립하여 신문학운동을 주도하던 동인지 『백조』를 발간했다. 

1923년 토월회에 관여하면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토월회의 문예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신극운동에 뛰어들었다. 1927년 박진·이소연 등과 함께 극단 ‘산유화회’를 결성해 창작희곡 「향토심」을 공연했으며, 1930년 최승일·홍해성 등과 극단 ‘신흥극장’을 조직해 연극운동을 이어나갔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대표되는 신시는 물론 「저승길」, 「봉화가 켜질 때에」 등 민족의 현실에 밀착한 소설을 창작하였고, 「조선은 메나리 나라」와 같은 비평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창작예술론을 전개하며 민요시 창작에도 힘썼다. 검열로 인해 「벙어리굿」 등 일부 작품은 실전되었으나 「흰 젖」, 「출가」 등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편희곡을 창작하였고, 그 외에도 다수의 희곡작품을 창작, 번안, 각색, 연출했다. 매체를 확장해 라디오극을 발표하기도 하고 대중가요의 번역가이자 창작자로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기 말, 희곡 「김옥균전」을 집필하다 원고를 압수당한 후에는 더 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35년을 전후해 서울 자하문 밖 세검정 근처에서 흰 고무신과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다니며 한방치료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한다. 1940년 강경·전주 등지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으며, 이 시기를 전후해 사찰을 순례하고 불경을 연구하였다. 해방 후 근국청년단에 가담해 청년운동을 전개하려 하였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7년 1월 5일, 폐환으로 별세하였다.

 

 

편찬자

최원식 : 문학평론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박수연 : 문학평론가, 충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노지영 : 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외래교수

허  민 :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눈으로 보는 책


편집자 리뷰

“노작 홍사용과 한국문학 100년”을 기리는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출간!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시인이자, 시․소설․희곡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근대 낭만주의 문학을 이끌었던 노작 홍사용(1900~1947)의 “정본” 전집(전2권) 마침내 출간!


제1권은 홍사용의 전 작품을 집대성한 작품집으로, 시 36편, 소설 6편, 산문 13편, 희곡 4편, 평론 2편, 기타 3편 등 64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으며, 부록으로 생애 연보 및 화보, 작품 연보, 노작 문학 해설, 노작에 대한 근현대 비평/기사/연구 목록 등에 이르기까지, 총 7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그의 육필 시조집인 『청구가곡』 완역본을 수록한 것은 그야말로 ‘정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귀한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2권은 이제까지의 홍사용 문학 연구를 한 권으로 정리한 연구서로서, 초기의 노작 연구부터 현재까지의 학술적 성과를 망라한 ‘홍사용 연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낭만과 저항’으로 상징되는 그의 문학을 재조명하고 그 다층적 성격과 문화정치의 면면을 살펴보며, 나아가 1920년대 한국근대문학장의 형성과 『백조』 문학 연구까지 아우른다. 노작 홍사용의 문학을 그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작품들의 갈래 및 문학장의 양상과 함께 살펴본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근대문학의 요람이었던 문예동인지 『백조』의 창간 100주년을 맞은 시기에 발간되어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시인이자 출판인, 연극인, 비평가, 문화운동가… 근대적 문화인으로서 홍사용의 삶과 예술


노작 홍사용은 한국문학사에서 문학적 외연을 가장 폭넓게 확장한 대표적인 문화인이다. 근대문학 초창기 『백조』(1922년 창간)라는 기념비적인 매체를 창립한 출판인이자, 낭만주의 시운동을 이끌었던 상징적인 문사다. 다채로운 화법의 자유시를 실험한 신문학운동의 주역이며, 신문학이 봉착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공동체의 정서가 담긴 전통적 형식을 지속적으로 탐색해나갔던 민요 시인이기도 하다. 3·1운동 이후에는 민족이 처한 문제들을 핍진하게 묘사한 소설들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그는 시와 소설 등으로만 자기 정체성을 한정하지 않고, 공연문학으로도 예술적 저변을 넓혀나갔다. ‘토월회’ 문예부장으로서 근대극 운동을 열정적으로 펼쳤으며, ‘산유화회’와 ‘신흥극장’을 창단해 민족적 정서를 형상화한 극작품을 창작한 연극인이었다. 지식 계층은 물론 문맹자 계층과도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각색하고 연출했으며, 문화사적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희곡들을 남겼다. 특히 불교문화에 대한 그의 심층적 사유는 희곡은 물론 다수의 산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방대한 고문(古文)을 원용해 급변하는 문화적 환경에 대한 자기 인식을 벼려왔고, 당대의 문학적 세태 앞에 날카로운 비평적 관점을 살려 ‘메나리 시론’을 제시하기도 했다.(※메나리: 농부들이 논일하며 부르는 농부가의 하나) 


한편으로 그는 다방면의 문화 영역을 접속시킨 문화운동가이기도 했다. 사회문화의 토대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대중의 감각이 변모해가는 현실을 그는 외면하지 않았다. 라디오극과 대중가요를 창작하며 매체 확장을 고민했고, 영화제작 같은 문화산업에도 관여하며 대중의 정동이 흘러가는 방향에 관심을 기울였다. 시와 소설, 희곡, 평론, 산문, 민요와 유행가 등 작품의 전 영역에 걸쳐 그는 박학한 지식과 다방면의 소재를 활용해 당대의 문학이 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그의 문학적 성취는 『백조』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나 백조파와 동일화될 수 없는 지점에 있고, 그의 문화적 이상은 ‘토월회’를 통해 알려졌으나 토월회를 넘어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당대를 살며 확장해왔던 예술적 반경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월탄 박종화의 회고대로 그는 “당시에 있어서 순 서정시를 쓰는 민요 시인으로서” “소월”과 “쌍벽”을 이루는 존재였음에도, 현재 “소월의 출세”와는 다른 좌표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의 문학 활동들이 뒤늦게 정리된 것이 큰 원인이겠지만, 보다 심층적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주류 장르에서의 자기도취적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전 민중과의 교감을 위해 문학적 변두리를 다양하게 발굴해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본” 전집을 만든 뜻—

근대문학의 초석이자 근대문화예술의 그물망을 확장한 홍사용의 문학적 지향과 사상적 모색


노작 홍사용은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음에도 생전에 자기 스스로를 위한 시집을 단 한 권도 발간하지 않았다. “시가 완성되었다고 자인하지 않는 한, 활자화시키기를 크게 꺼려”한 그의 선비적 품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출판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공동체의 매체운동과 공연운동에 투여하다가 가산을 탕진한 채 은둔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한 연유로 그의 문학은 오랫동안 정당한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개인 시집의 발간 실적을 중심으로 정전화(正典化)가 이루어지는 문학계의 관행 속에서 그처럼 자기검열이 강한 은사(隱士)들의 작품은 오랫동안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자료가 수집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활약상이 새로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1976년에 처음으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이로소이다』(근역서재)가 발간되었고, 1985년에 이르러 김학동의 『홍사용 전집』(새문사)이 발간되면서 본격적인 연구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후 몇 권의 작품집에서 그의 작품이 추가로 소개된 바 있지만, 기존의 전집에 미수록된 발굴 자료들이 한 권의 흐름으로 합본되지 않아 독자들은 그의 작품의 전모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선행 작업들을 계승하고 보완함으로써 이제야 비로소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전2권)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로써 근대문학의 초석이자 근대문화예술의 그물망을 정력적으로 확장한 노작 홍사용의 작업 앞에서, 이제 ‘과작(寡作)’과 ‘실전(失傳)’이라는 상투적 핑계를 들어 작품 연구의 한계를 고백하는 일은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본 전집에 새로이 추가된 작품과 생애사적 자료들은 그의 문학적 지향과 사상적 모색을 정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특히 본 전집에서는 그가 활용한 방대한 상호텍스트(경전, 고문)의 출전을 일일이 확인함으로써 문학적 해석의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고, 유의미한 학제적 맥락들을 개방하고자 했다. 이번 전집 발간이 그의 문학의 토대를 이루는 문화적 생태계를 조감하고 오늘의 문화예술적 쟁점들에 접속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노작은 무시무시한 맹금류가 아니라 이슬처럼 맑고 여린 가슴을 품고 세계의 그늘을 노래하는 새다. 그늘에서 와서 그늘로 가는 노래는 눈물의 수심으로부터 바닥을 차고 솟구치는 빛을 길어 올린다. (…) 비가 새는 누옥의 빗방울을 받으러 나온 그릇들의 울림이 저마다 달라 나의 집이야말로 악기점이고, 나의 가난이야말로 세계의 가난을 이해하는 창이라고 하였던 눈물의 왕이시여! 그 눈물로 백 년을 적셨으니 또 한 백 년을 면면히 흘러가소서.”

_ 손택수(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발간사’에서


“노작에게는 근대성의 투과를 거부하는 토착 지식들이 모자(母子)로 응축된다. 그 축에서 빛나는 ‘왕’, 그것도 ‘눈물의 왕’, 이 돌올한 출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노작에게서 생으로 드러난 토착신들의 이 마성(魔性)을 본격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 공교롭게 올해는 『백조』 탄생 백 주년이다. 때맞춰 제대로 된 정본 전집이 여러 분의 집합적 노고로 출판된다. 늦었지만 그 어떤 전집보다 충실한 정본 전집을 상재하매, 기쁘기 한량없다. 모쪼록 전집이, 바친 것, 이룬 것에 비해 턱없이 가리운 고결한 선비 시인 노작 선생의 진면목으로 인도할 겸허한 디딤돌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겠다.”

_ 편찬위원장 최원식(문학평론가) ‘편찬의 말’에서


“이 책은 노작 홍사용의 문학을 그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작품들의 갈래 및 문학장의 양상과 함께 살펴본 것이다. 100년 남짓한 역사를 지닌 한국 근대문학에서 홍사용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생각한다면, 이런 연구서가 이제야 발간된다는 사실은 매우 문제적이다. 홍사용이 그의 문학을 시작했던 시기가 한국 근대문학이 출발점을 갓 넘어선 때이므로 그의 문학은 결국 한국 근대문학의 씨앗과도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문학의 여러 개념과 체계가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과 함께 만들어져 흘러왔을 테니, 홍사용 문학의 시작점이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선과 같다면 홍사용 연구야말로 한국문학의 중요한 핏줄과 뼈대를 확인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_ 편찬위원 박수연(문학평론가) 제2권 ‘서문’에서